농학박사정현석 칼럼

흙을 살리고, 작물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그리고 상생하는.

FM애그텍 | 2017-04-04 16:54:34

조회수 : 2,371

 그 시절 대한민국 대부분은 가난했습니다.
특히 가난하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 삶의 3요소인 먹고, 입고, 지내는 여건이 더없이 부족한 시절이었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고 불과 반세기도 되기 전의 시절입니다.
 
그저 쌀밥한번 배부르게 먹고 싶었던 시절이었습니다. 1960년대 태어난 필자는 일곱~여덟살 때인가 나주에 계시는 외할아버지께서 우리집으로 가끔 다녀가셨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오시면 어머니께서는 우리식구들은 거친 겉보리 꽁보리밥을 주었는데 외할아버지 밥 그릇에는 수북히 가득 흰 쌀밥을 담아 내셨습니다. 철없는 저는 내게 있는 꽁보리밥은 먹다말고 외할아버지 흰쌀밥을 숟가락을 입에 문채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습니다. 그러면 손주들이 측은하여 마저 드시지도 않고 먹다 남기신 외할아버지 흰 쌀밥을 서로 차지하여 먹을려고 동생과 다투었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서른 여섯 가구가 살던 가난한 시골 마을에 흰 쌀밥 먹는 가정이 손에 꼽던 시절이었습니다. 4 ~ 5월 보리가 익기전에는 겨우내 저장했던 고구마도 떨어지고 먹을 식량이 부족하여 밀가루로 수제비를 만들어 건더기가 거의 없는 풀죽으로 끼니를 떼웠습니다.
 
이놈의 농사라는 것이 대부분 기계화가 되기 전인지라 거름내기, 논갈이, 모내기, 잡초뽑기, 관리, 수확 등까지 모두다 사람 손으로 하던 시절이라 참으로 일거리가 많고, 힘들고 끝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게다가 수리시설이 되어있지 않아 한 두달 가뭄이라도 들라치면 논은 쩍쩍 갈라지고 해충이 기승을 부려 훗날 가을 걷이에 쭉정이 밖에 남지 않아 일년 농사를 헛농사 짓기도 수차례..
 
·밭에 내는 거름이라야 고작 재래식 화장실에, 부엌에서 나온 재를 뿌려 나온 사람똥(인분) 뿐이니 집집마다 거름이 귀하여 밖에 다니다 똥이 마려우면 그걸 참고 제 집에 누워 귀한 거름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지금이야 상상이 가지 않지만 1950 ~ 1970 년도 초반 우리나라 10a(1단보) 당 쌀 생산량이 200 ~ 300 kg 초반때에 머물렀습니다. 그나마 그것도 매년 날씨와 병충해의 발생빈도에 따라서 그 수확량은 둘쑥날쑥 하였습니다. 흡사 지금 북한의 쌀농사와 흡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현재 기록이 남아있는 1900년대 초반에는 10a당 쌀생산량이 100kg 에도 못미치는 정도로 생산되었는데 이때의 식량 부족으로 굶주리는 이 나라의 백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통일벼는 1974년 전국 18ha를 농가에 보급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이후 유신벼, 밀양21, 밀양 23, 조생통일, 밀양22, 통일창, 금강벼, 황국벼, 만석벼등을 주력 품종으로 육성시켜 197710a당 농가의 평균 쌀 생산량이 553kg에 이르고 오천년 우리민족의 가장 큰 숙원인 배고픔의 해결, 쌀 자급을 이루어 냈습니다.
 
우리민족 쌀 재배 3000여년 사에 있어서 처음 이룬 배고픔의 해결이었습니다.
이때 우여곡절을 겪은 쌀 신품종개발과 더불어 쌀 자급의 기술을 이룬것들 뿐만 아니라 저수지등 수리시설과 관개시설의확보, 농지개량을 통한 경지정리, 농작업의 기계화 그리고 화학비료의 개발과 농약의 개발로 병충해의 차단 등으로 복합적인 것들이 함께 이루어져 쌀 자급을 이끌었습니다.
 
아마도 단순히 다수확 쌀 품종만 개발하여 보급시켜 심기만 하고 그저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에만 의존하여 농사를 짓고, 콤바인, 이앙기 한 대 다니기 힘든 논들이나 또는 사방에 무성하게 자라나는 잡초들을 효율적으로 제거하지 못하거나, 병충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견디지를 못한다면 쌀 자급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쌀자급은 단순히 품종개발뿐만 아니라 복합적인 농업 환경과 비료, 농약등의 자재의 개발 그리고 농기계화, 재배방법등의 기술의 발전등이 어우러진 결과물인 것이지요.
 
 2000년대 들어와서 사회가 발전하고 산업화가 되면서 그리고 국민들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배부름의 시대에서 맛있고 몸에 좋은 농산물을 찾는 시대로 변하였습니다. 그러는 과정에 친환경 농산물(유기농산물)에 대한 관심과 소비가 늘었습니다. 이에 우리 나라의 농업정책은 일부 농업의 환경보전기능을 증대시키고 농업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줄이며, 환경농업을 실천하는 농업인을 육성함으로써 지속가능하고 환경 친화적인 농업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친환경농업육성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이법의 취지는 친환경적인 생산증대를 위해 기존의 농약, 화학비료 등이 과다하게 사용되고 축산분뇨들이 다량 발생되어 농경지, 농업용수등의 오염문제가 대두되는 등의 농업의 여러 가지 안전성과 환경문제등이 사회문제화 되자 농약의 안전사용을 준수하고 작물별 시비기준량을 준수하고 적절한 가축 사료첨가제등 화학 자재 사용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하고 가축분뇨의 적절한 처리 및 재활용을 통하여 환경을 보호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업을 만들기 위하여 199911월 환경농업 육성법이 제정·공표된데 이어 199812월 시행되어 친환경 농업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일부 민간농업에서는 이미 70년대 초반부터 화학비료의 위해성과 농약의 과다한 사용으로 인한 농업환경의 문제와 생산물의 안전성에 대하여 위해성을 감지하는 유기농업 운동이 여러단체와 개인들에 의하여 진행되어 왔습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특히 안전한 먹거리 생산에 있어서 친환경 농업이 농업정책의 중요 과제가 되면서 많은 친환경 농업단체와 회사들이 친환경 농업에 대한 농민교육과 농법을 다양하게 홍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안타까운 것은 일부 친환경 농법, 또는 본인들의 지식을 교육, 홍보하는 과정에서 일부 유기농업단체 또는 종사자등이 화학비료와 농약에 대한 적대적인 반감, 그리고 일방적인 부정적인 매도를 일삼는 것이 만연하게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일부에서 자신들이 농법이나 제품을 팔기위하여 다른 농법이나 기존의 정당한 제품들을 비판과 척결의 대상으로 삼고 비방 매도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특히 친환경 농법에 있어서 일반적인 화학비료의 배척 그리고 농약을 적대시하는 것은 한편으론 안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화학비료와 농약의 유해성은 상당히 존재하거니와 많은 문제점들을 야기 시켜 왔습니다. 그리고 농산물의 안전성과 환경적인 문제점을 유발하는 것은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또한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 처럼, 무조건 화학비료와 농약의 적대시함은 내가 주장하는 나의 농법이 아무리 자연 친화적이고 친환경적일지라도 그 또한 기존의 화학비료와 농약과 다를 바 없을것입니다. 화학비료와 농약이 농산물의 안전성과 환경의 유해성의 분명한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농업의 산업적인 측면에서 대량, 다수확을 이끌어준 주인공임에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분명 필수불가결한 면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민간농법에서는 우리민족이 4300년 유기농업, 순환 농업의 종주국으로 전통적 자주유기농업국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은 화학비료와 농약이 개발되기전의 시대요... 사실 지난 수 천년 우리 민족과 민초의 삶은 그야말로 굶주림과 가난의 역사였습니다. 갖은 가뭄과 수해 그리고 수탈, 창궐한 병충해 등으로 인하여 많은 역사서에 굶어죽는 민초들의 고난의 삶이 역사에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굶주림과 가난이 긴 세월이어 오다가 증식되어버린 것이 지난 한 시절 새로운 품종개발과 그리고 기계화, 수리관개시설의 확충 그리고 경지정리와 더불어 화학비료의 개발과 병충해를 손쉽게 미리미리 처리하고 방제함으로써 얻어진 결과임에는 그 누구도 부인 할 수가 없습니다.
 
내것이 옳다하기 위하여 다른 것들을 틀렷다’. ‘내 농법이 최고이며 전부이기에 다른 농업기술과 자재는 잘못됐다주장하는 것이야 말로 지금 내 것도 잘못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특히 농업은 공산품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매년 같은 지역에서 같은 작물을 심어도 결과는 달라집니다. 왜냐면 농업은 자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살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 살아있는 생명을 다루는 것이 물론 화학비료와 농약으로만 해결 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농사를 자연적으로만 지을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농업을 산업적인 측면에서 소득을 남겨야하기 때문입니다. 농사가 함께하는 상생(相生)의 측면도 있지만 농부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통하여 삶의 근간을 이루는 경제적 보상을 얻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땅으로부터, 자연으로부터 무리한 수탈을 하기도 합니다. 수익성을 가져야만합니다.
 농사를 짓는 것은 세상의 근본이기도 합니다. (農事天下之大本)
 
하지만 농사를 지어 세상의 근본만을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논리가 농업에 있는것입니다. 이상(理想)을 꿈꾸기도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하기도 합니다.
 좋은 자재, 좋은 농기계가 있으면 사용하고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효율성이 있고 가치가 있다면 투자 하는 것입니다. 좋은농법, 좋은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친환경농법은 어찌보면 지나치게 배척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자신만이 전부라는 일부 친환경 농법이나 자재등을 교육을 통하여 판매하는 곳에서 많은 주장을 하기도합니다.
 
특히 그 대상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인 화학 비료와 농약이 늘 등장 합니다 최근에는 엄연히 친환경 육성법에 의한 국제 유기농업연합( I FOAM) 등에서 허용물질로 인정되고 우리나라 친환경자재로 공시, 인증되어 사용되어지는 공식 친환경 자재를 대상으로도 농민의 기술적 자신감을 박탈당하고 지적학대를 심화시켜 유기농업을 고비용으로 이끌고 있다는 등의 극단적인 반대이론을 주장하는 일부 회사인지 아님 회사를 아닌 것 처럼 하면서 결국에는 자신들의 자재를 또 다시 강매하다시피 하면서 무슨 무슨 농법을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의 교육과 전시회가 횡횅하고 있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정식 제조회사를 만들어 적법한 절차와 시간, 연구비용을 들여 개발하는 많은 회사의 공식적인 친환경자재를 마치 친환경농법을 하는 농업인을 수탈하고 자신들의 폭리만을 취하는 부적절한 자재, 대상으로 표현하고 무슨 농법회, 무슨 연구회 등등 마치 친환경 농법과 농민을 위한 헌신, 봉사하는 교육 기술연구회를 가장하여 결국에는 자신들의 또 다른 자재를 무슨 비법처럼 섞어 교묘하게 각종 교육과 전시회, 그리고 출간물을 통하여 판매하는 곳이 더러 있으며 그리고 자신들이 또 다른 제품등을 교묘히 팔고 있습니다.
 
내 농법과 자재가 옳다고 다른 자재 농법이 틀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서로가 각자의 역할과 주어진 사명대로 자부심과 열정으로 궁극적인 대한민국의 농업발전을 위하여 서로 인정하고 각자의 갈길을 갈 것입니다.
 
각 회사들이 만들어내는 친환경 자재들을 배척하고 화학비료, 농약을 적으로 삼아야만이 내가 주장하는 유기농법의 원리가 더 빛나고 합당하게 주장하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상대로 삼아서 그 상대를 희생양으로 삼아 내가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보다도 더 좋은, 뛰어난 가치로 나의 농법과 주장을 살펴 볼 일입니다.
 
이 땅의 많은 정당한 회사들의 친환경제품들, 그리고 영양제등이 그렇게 욕먹을 대상은 아닙니다. 이런 제품들은 나름 이 땅의 농업의 한 부분에서 많은 노력과 농민의 농업기술과 소득 증대를 위하여 많은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사용하는 농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받아오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그리고 그런 것을 위해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화학비료와 농약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분명히 이것의 과다 시비로 인한 환경의 파괴, 그리고 토양의 황폐화, 농산물의 안정성 등등 많은 문제점이 존재해 왔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화학비료와 농약은 우리가 가졌던 우리민족의 기본 욕구의 가장 절실했던 배고품을 해결해준 큰 공이 있는것들 입니다. 이제 그 배고픔이 해결되었다고, 우리고 그것을 무조건 매도하고 배척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보다 적절한 시비, 그리고 안정성 있는 농약의 개발과 사용등 보다 더 친환경적이고 상생농업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될 것입니다.
 
1980 ~ 1990년대 우리나라에 친환경 유기농업이 민간차원에서 전개되는 시기, 친환경농법, 지력을 높이기 위한 농업에 있어서 사용되는 자재가 대개 일본에서 건너온 효소(Enzyme) 종류들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정농회, 유기농업환경연구회(지금의 () 한국유기농업협회) 등의 효소제들 그리고 시마모토 농법 등등.. 그 시절 주로 쓰였던 효소들이 생력효소, 게르마효소, 바이엠후드, 도라지효소, 도오겐, 패화석 효소, 맥반석 효소, 바이오 효소 등등이 있었지만.... 이러한 효소들은 쌀겨나 밀기울 등과 흑설탕 등에 혼합하여 소위 균강이라는 것을 만들어 퇴비더미에 배합하여 발효퇴비등을 만들어 밑거름이나 웃거름 등으로 사용하거나 또는 따뜻한 물에 설탕을 녹여 효소를 넣고 효소액을 만들어 작물에 살포하여 영양제의 효과와 병해방제, 광합성 촉진제로 많이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90년대 초반 일본 히카데루오교수에 의해 개발된 유용미생물균 집단 EM( Effective Microorganizm)균이 국내 들어오기 시작했고 한국 원예기술정보센터에서 락토라는 유산균 효모 혐기성 미생물제가 일본을 통하여 1991년도 국내 출시되어 바야흐로 토양개량과, 퇴비발효등의 지력증진, 작물생육촉진용도로 미생물제의 시대가 분격 도래되어 여기저기서 많은 미생물제가 생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어서 조한규 선생이 이끄는 () 자연농업협회에서 보급한 토착미생물의 자가제조이용 농법이 전국적인 인기를 끄는 등 우리나라 친화경 농업에 있어서 미생물과 효소는 큰 근간이 되어 왔습니다.
 
 필자는 1991년부터 한국원예기술정보센터에서 근무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효소와 미생물제의 전국적인 움직임을 겪었으며 우리나라 미생물제의 한 획을 그었던 락토라는 유산균 효모 혐기성 미생물제를 생산하고 보급하고 때론 교육하는 업무를 맡아서 90년대부터 불붙기 시작한 친환경유기농업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 이러한 순수미생물을 포함하여 미생물을 이용한 더불어 미생물과 효소의 발효와 합성에 의한 수많은 기술개발과 제품화를 고민하던 차 19944월 지금 FM애그텍의 전신인 푸른농산을 설립하여 본격적인 효소와 미생물의 발효와 합성에 의한 제품개발과 보급에 몰두하였습니다. 2017년 어느덧 세월이 흘러 24년차 그간의 스물네해 오직 한 길 효소와 발효미생물의 합성과 발효에 의하여 연구개발되어진 열네가지 제품들... 그저그런 삼류미생물회사, 영양제회사.. 여기저기 넘쳐나는 그저그런 제품 만드는 회사... 그런소릴 듣지 않기 위하여 귀담고 눈 부릅뜨고 한길로 달려온지 스물 네해.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 열네가지...
 
우리나라 70 ~ 80 년대 초창기 유기농업 깨나 한다 치면 일본산 효소제 사용하는 것이 대단한 선진농법이라 하던 때가 있었지요.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전국의 농협, 기술센터에서 농업선진지를 견학하면 단골 코스로 빠지지 않았던 그런, 우리가 그저 부러움 의 대상이었던 일본 농업시장에서 FM애그텍 발효합성 기술로 개발되어진 발근력제품이 일본 뿌리발근제 제품 판매력 1위에 오르고 일본의 유슈의 농업 기술지 현대 농업’ ‘농경과 원예등의 기술지에 매달 오르내리는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친환경 농업이 되었든지 아니면 관행 농법이든지 간에 농업은 복잡다난한 과정과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를 다루는 진지함이 늘 공존합니다. 특히 자연이라는 거대함 앞에서 그것을 극복하는 업으로서 그 성과를 내어야하는 농부의 명제 앞에 농업은 또 다른 제 3의 산업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지난 긴 세월 농촌은 가난했고 민초들의 삶은 지난 했습니다. 그리고 우린 지난 2~30년 우리농업은 큰 변환기에서 또 다시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잊지 않습니다. 농업이 가지고 있는 그 질기고 참된 가치의 본질을 ... 그것은 상생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흙을 살리고, 작물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농업입니다 .상생은 서로 살리는 것입니다.
이전   다음
  • 등록된 코멘트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FM애그텍